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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심리학]

묻지마 범죄는 왜 반복될까: 이상동기 범죄의 심리

유일강담 2026. 5. 11. 17:20

2026년 5월 5일, 어린이날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광주 도심의 한 골목에서 17살 여고생이 귀갓길에 일면식도 없는 24세 남성에게 흉기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루 전날인 5월 4일 오후에는,
인천 부평구의 한 공원에서 비둘기를 쫓아 뛰어가던 두 살 아이가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았습니다.

가해자는 60대 남성이었고, 아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피해 아이의 부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이날인데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이 시작됐다."

 

두 사건을 읽으면서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감각을 느끼셨을 겁니다.

 

무섭다.
이해가 안 된다.
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그 '왜'라는 질문이 오늘 이 글의 시작입니다.

 

이상동기 범죄, 흔히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매년 수십 건씩 반복되고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이유 없이 향하는 폭력은 이제 더 이상 드문 사건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판단이 아니라 이해의 시선으로,
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도심 골목 한편에 놓인 흰 꽃다발과 횡단보도 풍경, 이상동기 범죄 이후 남겨진 추모의 분위기를 표현한 이미지
이상동기 범죄는 한 사람만의 상처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건 이후에도 일상의 안전하다는 감각은 오래 흔들리곤 합니다.

 

[ 유일강담 심리 리포트 ] 그들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왜 이런 사람이 만들어지는가'를 묻지 않으면 예방도, 재발 방지도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이상동기 범죄 가해자들의 심리 구조는 심리학 연구들을 통해 몇 가지 공통된 흐름으로 설명됩니다.

세상이 나를 해친다는 믿음

이상동기 범죄 가해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피해자다."

 

이 생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된 실패, 관계에서 받은 상처, 사회에서 밀려난 경험들이
오랜 시간 쌓이면서 어느 순간 이런 방식으로 굳어집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된다."
"사람들은 나를 이유 없이 무시한다."
"내가 이렇게 된 건 세상 탓이다."

 

처음에는 그냥 억울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감각이 오래 반복되고, 아무런 개입도 없이 계속되면 분노의 방향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특정 사람을 향했던 분노가,
어느 순간부터는 세상 전체를 향한 적대감으로 굳어지기 시작합니다.

범행 직전까지 피해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진술이 이 사건들에서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는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배제해온 세상을 대신하는 존재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고통을 안으로 감당하지 못할 때

사람은 감정을 느끼면 보통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하려 합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거나, 혼자 시간을 갖거나, 글을 쓰거나, 울거나.

 

그런데 그 능력이 오랜 시간 발달하지 못했거나 심각하게 손상된 사람들은
고통을 안에서 다루는 대신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을 택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재화(externalization)라고 합니다.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질 때, 그 감정을 타인을 향한 공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하필 그 사람이냐는 질문에 논리적 답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경우 범행에는 뚜렷한 이유보다 오래 쌓인 감정의 폭발에 가까운 모습이 나타납니다.

고립이 길어질 때

대상관계이론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기를 만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감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경험이 인간의 내면을 지탱한다.

 

관계 속에서 형성된 상처와 단절이 왜 반복되는지는 대상관계이론 관점에서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같은 문제를 반복할까: 대상관계이론으로 이해하는 관계 패턴의 심리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마음의 구조를 이해하는 심리학의 시선 살다 보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관계가 시작될 때는 편안했는데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불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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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동기 범죄 가해자들의 삶을 사후에 살펴보면 대부분 긴 시간의 고립이 발견됩니다.

 

직장을 잃고, 가족과 멀어지고, 친밀한 관계가 사라지고, 지역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시간들.

그 단절이 길어지면 자신이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감각 자체가 희미해집니다.


그렇게 고립이 길어진 어느 순간, 타인의 고통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상대가 고통받는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가 극단적인 폭력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 Case Study ] 왜 어떤 분노는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을 향할까

강남역 살인 사건

2016년 5월,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처음 보는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성들에게 자신이 무시당해왔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이력과 사회적 고립 상태가 함께 언급됐습니다.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볼 것인지, 이상동기 범죄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큰 사회적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피해자 개인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해자의 분노는 오래전부터 이미 다른 곳에 쌓여 있었고, 그 감정이 우연히 마주친 타인에게 향했다는 점이 사람들에게 깊은 불안을 남겼습니다.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2023년 7월,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골목에서 불특정 시민들을 상대로 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가해자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너무 힘들어서", "나처럼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계속 실패와 단절 속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평범한 일상이 더 큰 박탈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생기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향하던 분노가 어느 순간 바깥으로 향하기 시작하고,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까지 공격의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같은 해 8월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인근에서 또 다른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가해자는 차량으로 시민들을 들이받은 뒤 흉기를 사용해 추가 공격을 이어갔고, 피해자들은 모두 그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조현병 관련 치료 이력과 약물 중단 문제가 함께 언급됐습니다. 혼자 인터넷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피해망상 증상도 점점 심해졌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자체를 폭력성과 단순하게 연결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정신질환 환자들은 비폭력적이며, 오히려 사회적 고립과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치료의 단절, 현실 인식의 혼란, 오랜 고립. 이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겹쳐 있었을 가능성이 함께 이야기됐습니다.

 

세 사건의 배경은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가해자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남깁니다.

 

"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분노가 향하게 되는 걸까."

 

심리학에서는 오래 쌓인 좌절감과 고립감이 관계 안에서 풀리지 못할 때, 그 감정이 결국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향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처음에는 세상으로부터 밀려났다는 감각이 남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감각이 타인 전체에 대한 적대감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 U- Insight ]  이 사건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세 가지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범죄는 범죄 아닌가.

 

맞습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입은 상처는 어떤 설명으로도 되돌릴 수 없고, 심리학적 분석이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왜 이런 사람이 만들어지는가'를 묻지 않으면, 예방도 재발 방지도 결국 말뿐인 이야기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신호는 있었습니다

이상동기 범죄 가해자들은 대부분 범행 이전에 이미 어떤 형태로든 위기 신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번 광주 여고생 살해 사건만 해도 범행 이틀 전에 스토킹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이 직접 사건 접수를 원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종결 처리됐고, 그 신고는 이틀 뒤의 범행을 막는 연결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신호가 없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신호는 있었는데, 그것을 포착해서 다음 단계로 연결하는 구조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닿을 수 있지만, 요청할 수도 없는 상태이거나 요청할 의지조차 없는 사람에게 먼저 닿는 체계는 지금도 여전히 너무 약합니다. 어떻게 먼저 연결할 것인가, 이것이 이 사건들이 사회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고립을 개인의 실패로만 볼 때

한국 사회에서 취업하지 못하는 것,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경우 개인의 의지와 능력의 문제로 이야기됩니다. 그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때, 어떤 사람은 그 고통을 안으로 향하게 하고 어떤 사람은 밖을 향하게 합니다. 이상동기 범죄는 그 감정이 극단적으로 바깥을 향한 경우입니다.

 

이것이 개인의 도덕적 실패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지 체계의 공백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는 관점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방을 이야기하려면 그 불편함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공포에 대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지금 두려움을 느끼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도 길을 걷다가 당할 수 있다는 생각, 아이를 공원에 데려가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 그 공포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입니다.

 

이상동기 범죄가 남기는 피해는 직접 피해자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건을 접한 사람들,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우리 모두에게 안전하다는 감각이 흔들리는 상처가 조용히 남습니다. 다만 그 공포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배제로 향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상동기 범죄는 특정 성별, 나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 고립된 상태와 도움받지 못한 시간이 폭력으로 이어진 경우에 더 가까웠습니다.

 

햇살이 비치는 도심 공원에서 가족과 시민들이 평온하게 산책하는 모습, 안전한 일상과 회복의 감각을 표현한 이미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서로를 경계하지 않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일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날의 공원이 다시 안전해지려면

비둘기를 쫓아 뛰어가던 두 살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그날의 공원은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게 안전한 곳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바로 옆에 있었고, 따뜻한 햇살이 있었고, 쫓아갈 새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뛰어가는 걸 바라보며 웃고 있었을 아버지의 표정까지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 아이는 이제 그 공원을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요.

 

광주에서 밤길을 걷던 17살 여고생은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을 뿐입니다.

 

이상동기 범죄가 가장 깊이 건드리는 것은 몸의 상처만이 아닙니다. 낯선 사람도 기본적으로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믿음,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한 곳이라는 감각, 그것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단절된 사람들을 어떻게 먼저 발견할 것인가, 고통 속에 있는 내면이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사회 안에 만들 것인가, 이 질문들이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함께 감당하지 않으면 다음 어린이날도, 다음 밤길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살 아이가 다시 마음 놓고 비둘기를 쫓아 뛸 수 있는 공원. 그것이 우리 모두가 되찾아야 할 일상입니다.

 

유일강담 | 삶의 이면을 심리학의 시선으로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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